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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순정
아빠가 이상해진 건 작년 말쯤입니다.
평소의 아빠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귀여운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겁니다. 엄마와 다녀온 콘서트에서 우스운 표정의 셀카를 찍어 보내오질 않나, 직접 기타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보내오질 않나, 부쩍 메시지도 자주 하고, 공연히 전화를 걸어 별로 궁금하지도 않을 것 같은 걸 이것저것 물어오곤 하셨습니다. 친하게 지내자는 신호를 보내는 아빠가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성실히 답변하는 것으로 그 구애에 화답했습니다.
작은딸의 결혼 준비로 변하기 시작한 상남자 '아빠'
저희 아빠는 전형적인 가장이셨습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감정표현도 잘 못하는 무뚝뚝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처럼 적응 안되는 변화는 모두 동생 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빠는 얼마 전 작은딸, 그러니까 제 여동생을 결혼시켰습니다. 아빠는 동생의 남자친구, 즉 저의 제부가 될 친구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장인어른의 역할을 착실히 시작하셨습니다. 상견례는 이렇게 하고, 신혼집은 이렇게 하고, 혼수니 예단이니 뭐 그런 어려운 것들은, 잘 아는 건 계획대로 꼼꼼히, 잘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여기저기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고 그렇게 해서 준비했습니다. 물론 평소의 아빠답게 차근차근 준비해둔 덕에 동생의 결혼 준비는 한 치 어긋남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일처리를 할 땐 그렇게 똑똑하고 치밀한 아빠건만, 맘처럼 안되는 게 부모 마음인가요? 준비성 철저한 아빠도 왠지 모르게 허해지는 마음에는 미리 대비하지 못하셨나봅니다. 결혼준비를 얼추 끝내고 동생 결혼이 100일 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신부 입장에 아빠 손잡고 들어가 사위한테 넘겨주는 것만은 절대 하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셨습니다. 그런 거 낯 간지럽고 싫다고, 요즘은 그런 거 안 해도 되지 않느냐고 하셨구요~ 그래도 꼭 아빠랑 같이 들어가고 싶다고 동생이 재차 설득해봐도 말없이 쓸쓸하게 웃기만 하셨습니다. 이윽고 농담처럼 꺼내놓은 아빠의 진심.
“딸 뺏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왠지 외롭고 서운하네...”
무뚝뚝한 성격 속에 감춘 딸들을 향한 진심
나와 내 동생이 아빠 손보다 겨우 조금 컸을 때, 아빠는 퇴근하면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방으로 달려와 한참을 그저 보기만 했다고 합니다. 어쩔 줄 모르는 손으로, 만지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빤히 보기만 했다고... 무뚝뚝한 성격 탓에 딸들한테 사랑한단 말 한마디는 못해도, 두 딸과 찍은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놓고 두고두고 보기만 하는 사람이 저희 아빠였습니다. 나와 내 동생은 아빠에겐 생의 최초부터 함께한 친구이자, 순정으로 지켜왔던 연인이었던 것입니다. 딸 뺏기는 것 같아 외롭다는 말은, 아빠로서는 엄청난 용기를 내 털어놓은 진심이 아니었을까.. 맘이 울컥했습니다. 며칠이 먹먹했습니다.

얼마 전 동생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결국 동생 손을 잡고 입장한 아빠는 누구보다 멋졌습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회장님과 부회장님, 사장님께서도 경사를 함께 축하 해주셨습니다. 안강 공장에 계신 아빠 회사분들은 서울까지 먼 길을 달려와 함께 기쁨을 나눠 주셨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저조차 동료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아빠의 경사에 함께 해주시고자 하는 풍산 가족들의 그 큰 마음을 감히 짐작만 할 뿐입니다. 아빠 회사 분들의 동료애가 그저 감사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작은 딸을 시집 보낸 저희 아빠의 그 공허함을 바로 옆에서 챙기지 못하는 큰 딸로서, 풍산 가족들의 따뜻한 동료애가 아빠의 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채워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강 김길수 상무 장녀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