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월 지섭이와 함께한 우리 가족 한라산 등반기
아침부터 기분 좋은 봄비가 내리던 날,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아내의 부재중 전화 한 통과 문자가 있었습니다.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하고 다시금 확인해 보니 ‘지섭이 화상 화창한병원’이라는 문자에 놀라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와 아이의 비명소리. 아이가 화상을 입었다고 하는데 그저 얼굴만은 아니길 바랬습니다.
“심해...? 얼굴이야?” 아내는 울먹이며 “응.......” 이라는 소리에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두살배기 아들의 전신 화상, 견디기 힘든 시간
호기심이 많았던 15개월 아들이 뜨거운 보리차 병으로 손을 뻗어 자기 쪽으로 쏟아 부은 것입니다. 피부는 그대로 벗겨졌고 얼굴과 가슴은 심재성 2도 화상, 오른쪽 팔은 더 깊은 화상으로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얼굴, 가슴, 팔 등 상반신을 붕대로 감고 계속 울기만 한 아이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립니다. 매일 받아야 했던 소독시간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퇴원 후 약 6개월 동안은 자외선 차단을 위해 암막 커튼을 치고 지냈고 외출은 저의 퇴근시간이 돼서야 가능했습니다. 한참 뛰어다닐 시기에 집에만 갇혀 있는 아이와 아내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기 위해 퇴근 후 쉬고 싶었지만 매일 식구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원장님이 아이의 피부가 많이 좋아졌고 자외선에 노출되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에 바로 제주도 여행계획을 세웠습니다. 집에만 있었던 아내를 위해 힐링 목적의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아내는 지섭이와 함께 한라산을 등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들의 태명은 ‘록담’, 백록담에서 따온 것인데 한라산에 셋이 올라가 다시금 마음을 잡자고 했습니다. 힐링하고 싶어서 떠나는 여행에 한라산이라니.... 처음엔 바로 거절했다가 지금 이때가 아니면 평생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결국 제안을 받아 들였습니다.
아이의 화상을 극복하며 더 단단해진 우리 가족의 제주도 힐링 여행
11월 집중휴가 제도를 이용해 3박 4일로 떠난 제주도는 우리 세 식구가 함께하는 첫 여행이라 나름 긴장되고 많이 설렜습니다. 가장 날씨가 좋은 날,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여 한라산 입구 성판악으로 이동했습니다. 등산 코스는 성판악에서 시작해서 관음사로 내려오는 루트였습니다. 6시 50분부터 오르기 시작했는데 첫걸음은 무척 가벼웠습니다. 아기를 업고 등산하는 사람은 혼자였기에 모두들 대단하다며 힘내라고 응원의 말을 해주었고 그 말이 무척 힘이 되었습니다. 1시간 정도까지는 말입니다.
1시간이 지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올라가는데 몸은 땀에 젖었고 한걸음 떼기가 힘들었습니다. 22개월 아이의 몸무게는 13kg.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의 무게인지 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뒷모습과 아내의 뒷모습을 보니 이상했습니다. 건장한 남자들도 조그마한 가방을 메고 가볍게 올라가는데 아내의 가방은 남들에 비해 크고 무거워 보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방에는 아기의 기저귀와 물티슈, 여벌 옷, 아기와 우리가 먹을 음식과 간식, 물이 있어 부피가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내, 아이와 함께 오른 한라산 정상에서 감동과 보람 느껴
진달래 대피소에서 마지막 정상까지는 정말 깔딱깔딱했습니다. 아내에게 “나는 안 될 것 같다. 먼저 가” 라는 말을 수 없이 하였지만 같이 올라가는 사람들의 응원에 힘을 얻어 약 5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은 맑은 날씨에 굳건히 버티고 있었고 탁 트인 제주와 저 멀리 바다를 보니 보람과 함께 울컥함도 올라왔습니다. 다들 아빠 고생했다며 박수도 쳐주고 여기저기서 간식도 나눠주셨습니다. 아이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최연소 등반자라며 예쁨을 받았습니다.
이번 등산을 통해 우리 가족에게 어려움과 시련이 오더라도 셋이 힘을 모아 끌어주고 밀어주며 받쳐준다면 어떤 일이든 헤쳐 나갈 수 있는 가족의 힘을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산 시설팀 김병욱 대리